2020. 10. 10. 15:41ㆍ어쩌다 얻어걸린 제주에서
요즘 가끔 집 주위 산책을 하면
함께 따라나서 주는 마루.
며칠 전 산책을 하며 마루가
더 많이 걷고 싶어 하길래,
그럼 아빠랑 10Km 정도 걸어볼래? 하고 물으니
기꺼이 가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다른 아가들에게
마루하고 아빠는 내일 10km 정도 산책할 거다 하니,
다른 아이들도 함께 따라나선다고 한다.
결국 그렇게 해서 온 가족이 출동을 하게 되었다.
이번 산책을 위해 나선 곳은 쫄븐갑마장길.
큰사슴이오름하고 따라비오름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코스로
10km가 좀 더 되는 그런 길이다.
오름과 잣성길, 그리고 삼나무길, 곶자왈 등
걷는 재미가 솔솔한 그런 길이다.
무엇보다 추석 즈음이면
억새가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데,
그 광경이 정말 장관이다.
원대한 목표를 안고서 먼저 점심 대신할 빵을 사서 먹고,
바로 산책할 장소로 이동을 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바로 산책을 시작했다.
유채꽃 플라자에서 큰사슴이오름을
향해 걷자마자
큰 수풀로 우거진 입구에서
누군가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풀이 너무 길다고...
자기는 마을 산책처럼 좋은 길로
다닐 거라 생각했다고...
한 아이의 불만으로
벌써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조금만 가면 길이 좋아져,
좀만 가보자 하고 겨우 설득해서 가는데...
얼마 가지 않아 유채꽃 플라자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이 나오시더니,
진드기하고 뱀조심하시라고
말씀해 주신다. 어흑...
타이밍도 기가 막히시지...
결국, 2차 멘붕에 빠진 그 아이와
막내가 뒤로 빠진다.
조금만 더 가면 진짜 길 좋은데...
결국 내심 걷고 싶지 않아 하던 엄마와
불만 중인 아이와 막내는 알아서 놀기로 하고,
큰애와 둥이 중 하나인 마루만
나와 함께 길을 계속했다.
가족과 헤어지고 조금 더 걸으니
큰 사슴이오름 앞에 억새밭이 펼쳐졌다.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억새들이 아직은 따가운 태양 아래 반짝거렸다.
아이들은 억새를 끊어 한참을 들고 다니며 논다.
이제 쫄븐갑마장길의 최고 난이도인
큰사슴이오름이다.
아이들은 큰사슴이오름에 있는
계단을 보자마자 달려 나간다.
"애들아, 여기 힘드니까, 천천히 올라가~
나중에 힘 빠져서 끝까지 못 간다"
아빠 말에 아랑곳 않는 아이들은
괜찮다며 힘닿는 데까지 뛰어 올라간다.
생각보다 한참을 뛰어 올라간
아이들은 이제야 좀 지치는지,
정상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묻는다.
물도 찾는다.
하지만 이내 정상에 다다른 아이들은
저 멀리 한라산의 멋진 풍경을
아주 잠시 감상하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늘도 없는 정상에서 뛰어오느라
흘린 땀을 애써 말린다.
잠시의 휴식 후 큰사슴이오름
뒤 쪽 길로 내려간다.
이 길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내려가는 길에
다양한 들꽃들과 억새를 꺾어
이쁜 꽃다발도 만들어 본다.
생각보다 근사한 꽃다발을 든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이 되어
내 맘에 담긴다.
문득문득 눈물 나게 행복한 순간들이다.
다 내려오자마자 아이들은
힘들었는지 엄마부터 찾는다.
아직 쫄븐갑마장길을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결국 아쉽지만, 이번 쫄븐갑마장 산책은
이정도에서 마무리.
역시 가족들과 함께 이 길을 완주하자는 것은
나만의 욕심이었던 것 같다.
언젠간 함께 돌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때, 지금과 다른 행복이 더해질 테니,
서두르지 않겠다.
오늘도 행복하게 즐길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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