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7. 06:33ㆍ어쩌다 얻어걸린 제주에서
제주도의 마을 이름은
참 이쁜 이름들이 많은 것 같다.
달이 머무는 마을 월정리(月汀里)
그리고,
시간이 더하는 마을 가시리(加時里).
제주도의 감성이란 정말 시적인 것 같다.
가시리에는 유채꽃과 벚꽃으로 유명한
녹산로와 갑마장길, 쫄븐 갑마장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적도 있는 녹산로는 봄이 되면,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해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그래도 한산한 편이었다.
지금처럼 코로나-19의 증가추세가 지속된다면,
내년엔 아마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기 힘들 것 같다.
쫄븐갑마장길은 가을이 정말 걷기 좋다.
한두 달 전에 아가들하고 다 같이
쫄븐갑마장길을 걸어보자고 도전했다가
1/5 정도만 임무 완수했던 곳이기도 한 그곳이다.
출처: https://ifellas.tistory.com/49?category=967564 [어쩌다 얻어걸린 제주]
갑마장길을 짧게 걸을 수 있는 코스가
쫄븐갑마장길이다.
물론 '쫄븐'이라는 말은 제주어로 짧은이란 뜻이고,
갑마장은 예로부터 최고의 말을 갑마(甲馬)라 했는데,
이 말을 키우던 마장(馬場)을 뜻한다.
즉, 예전에 가시리 인근에서 최고의 말을 키웠고,
이 공간에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이 갑마장길이다.
갑마장길은 20km나 되고 소요 시간은 6시간 정도이고
쫄븐갑마장길은 10km, 3시간 소요된다.
(실제로 걸어보니,
나는 4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번 쫄븐갑마장길의 시작은
주차하기 편한
조랑말체험공원(행기머체)에서부터
시작했다.
걷는 코스는 조랑말체험공원(행기머체), 꽃머체,
유채꽃프라자, 큰사슴이오름, 잣성, 따라비오름
그리고, 다시 조랑말체험공원으로 오는 것으로 잡았다.
조랑말 체험공원에서 녹산로를 건너면,
아주 조용한 숲길이 나온다.
길옆에 이렇게 호젓한 길이 있다니,
처음부터 놀라웠다.
이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꽃머체가 나타났다.
머체란 제주어로 돌무더기라는 뜻인데,
꽃머체를 보니,
돌무더기 위에 아주 멋진 풍채를 자랑하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돌무더기에 이렇게 큰 나무가
자랄 수 있다니 자연의 생명력이란
정말 너무 신기하고 위대한 것 같다.
꽃머체를 지나 숲을 지나니
곧 초지의 난 길이 보였다.
그리고 시멘트 도로가 보였는데,
이 길과 함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그 뒤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왠지 이국적으로 보인다.
물론 제주살이 6년 차 정도 되니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직 멋지게 보이는 걸 보니,
제주사람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이 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유채꽃프라자로 빠지는 길이 보인다.
아가들하고 왔을 때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는데...
유채꽃프라자를 지나
큰사슴이 오름으로 향하는 길은
억새가 한창이었다.
억새 사이로 난 길 끝에 보이는
큰사슴이 오름의 모습은
도도한 아가씨 느낌이 든다.
도도한 아가씨에 반해
눈을 떼지 못하고 걷다 보니
금세 큰사슴이오름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을 향해 뻗은 계단을
오르다 보니, 영주산의
천국의 계단이 연상이 되기도 했다.
출처: https://ifellas.tistory.com/119 [어쩌다 얻어걸린 제주]
정말 한걸음 한걸음
파아란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머리가 맑아지는 만큼,
숨이 점점 차오르는 것은 함정...
맑은 하늘 덕분에 큰사슴이오름을 넘어
뒤를 바라보니,
도도한 아가씨와 다시한번
사랑에 빠질만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큰사슴이오름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길을 재촉하니
잣성길이 나타난다.
사실 큰사슴이오름부터 잣성길까지
억새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곳 중에 한 곳이어서
때마다 가보는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잣성으로 접어드는 길은
예전에 비해 경관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초원이었는데,
지금은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와 있어
생태계가 파괴된 느낌이 들어
매우 아쉬운 공간이다.
왼쪽에는 잣성과 삼나무가
그리고, 오른편에는 억새밭과
저 멀리 따라비오름이 보였던
그 이쁜 길이 지금은 태양광발전패널로
가득 차 있어 과연 이런 것이
친환경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나로선 이해가 잘 안 된다.
무분별한 태양광발전사업으로
무책임하게 관공서에서는
허가를 내주고 지원해준 덕분에
제주의 멋진 풍경들이 많이 망가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삼나무숲길에 접어들었다.
오랜만에 그늘 밑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한여름에 쫄븐갑마장길을 걸으면,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뜨거운 날 쫄븐갑마장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면
절대 이 삼나무길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삼나무길은
따라비오름 밑자락까지 이어지는데,
삼나무가 정말 크고 멋지다.
오아시스 같은 삼나무길을 지나니,
또 한 번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경을
맞이하게 된다.
그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정말 표현력의 한계에 다다르는
멋진 자연의 모습이다.
온통 억새로 뒤덮인 오름은
아름다운 라인과 함께
너무 사랑스럽다.
정말 아끼고 아껴서
한걸음 한걸음 걸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런 멋진 풍경을
못 보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까지 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은
나를 격하게 환영해주는 것 같다.
아껴서 따라비오름에 오르니,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한라산 뒤로 넘어가
금빛이던 오름은 붉게 상기되기 시작한다.
오름 중턱에 억새 사이로 한 마리 강아지가
여유 있게 정상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해 준다.
정상에서 한라산 쪽을 바라보니
해가 아직 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해가 지는 것까지 보고 가고 싶지만
아직 남은 길이 있어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비오름은 노을 보러
자주 오는 곳이기도 하니까...
출처: https://ifellas.tistory.com/78?category=967564 [어쩌다 얻어걸린 제주]
충분히 해가 지기 전에
완주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여유를 너무 부렸나 보다.
따라비오름을 내려와
조랑말체험공원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숲 속을 보니 예상보다 빨리
어두워졌다.
어두운 숲은 꽤나 무섭다.
20분쯤 정신없이 걸었을까?
드디어 원점에 도착.
큰사슴이 오름이 생각보다 힘든 코스였지만,
전체적으로는 평이한 쫄븐갑마장길이다.
무엇보다
코스 중간중간 펼쳐지는 깜짝 놀랄만한 풍경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더욱 아름다워져야 할 이 길들이
생각보다 빨리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정에서는
정말 제주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개발을 하는 것인지
원점부터 생각해주기를 바라며
씁쓸한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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