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5. 11:44ㆍ어쩌다 얻어걸린 제주에서
오늘(12월 4일) 오후 4시 5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약 40분간의 자유 시간이 내가 주어졌다.
하늘을 보니,
오늘 구름이 예사롭지가 않은 것으로 봐
멋진 노을이 기대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낮에 잠시 세화에 다녀오면서
봐 두었던 오름으로 후딱 다녀오기로 하고,
오름에 도착하고 이름을 보니
은다리오름(윤드리오름, 은월봉).
하지만, 여기는 탐방로는 안 보이고,
철망 같은 것으로 막아 놓았다.
아니 대체 왜 오름을 이렇게 막아 놓은 것인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제주 오름은 사유지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오름을 가면
이렇게 철망을 쳐 놓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곳들이 종종 있다.
이렇게 멋진 오름들을 사유화할 수 있도록
그냥 두고 있는 제주도정이 납득이 안 간다.
도차원에서 이런 오름들을
적극적으로 매수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아름다운 오름을
공유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야 아는가 싶다.
어쨌든 주어진 시간을 얼마 없는데,
노을은 보고 싶고,
은다리오름에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냥 집으로 가야 하나?
아님 다른 오름을 한번 다시 도전해 볼까?
이미 해는 거의 기울어,
하늘색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왜 이렇게 해가 빨리 지는지 원...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가보자 하고
향한 곳은 바로 손지오름.
용눈이오름과 자동차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오름으로, 용눈이오름처럼 유명한 오름은 아니다.
하지만, 전부터 눈여겨 두었던 곳인데,
당체 올라가는 길을 잘 몰라서 어쩌나 했던 곳인데...
이번엔 지도 맵에 검색을 하니,
입구 같은 곳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지도맵을 따라가니,
주차장이 똭!
매번 다니던 곳인데,
왜 못 봤을까....?
어쨌든 주차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손지오름(손자봉, 손지악)을 향해
후다닥 뛰어 올라갔다.
손지오름은 한라산과 축소판이라고 해서
한라산의 손자라는 의미로 그렇게
명칭이 지어졌다고 한다.
정말 한라산하고 비슷하다고?
밑에서 보기에는 그냥 매끈한 오름 같아 보이던데.
근데 길이 어디 있는 거야? ㅜㅜ
아 시간은 없는데....
이미 하늘을 보니, 해는 이미 진 것 같고...
길은 어딘지 모르겠고...
미추어버리겠네...
무작정 정상을 향해 뛰자!
얼마 높지도 않아 보이는데,
일단 뛰는 것으로~
그렇게 앞에 보이는 작은 언덕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우와~!
항상 용눈이오름에 올라 언제 손지오름을
올라가나 하며 바라보던 곳이었는데,
이제 반대로, 손지오름에서 용눈이를 바라보고 있네.
이 쪽에서 용눈이오름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용눈이오름은 선이 참 이쁘다.
그리고, 용눈이오름 왼편으로는
다랑쉬와 아끈다랑쉬오름이 보이고
그 멀리에는 바다가 살짝 보였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근데 여기서부터는 억새가 더욱 억세게
빼곡히 들어서 있고,
경사도가 갑자기 높아진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노을의 여운을
길게 즐기고 싶은 마음에,
무릎이 안 좋은데도,
열심히 경사가 높은 그곳을 뛰어 올라갔다.
다행히 틈틈이 러닝을 했던 터라 그런지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올라는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길이란 게 있긴 있는 건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정상으로 향하다 보니
왼편에 억새 사이로 뭔가 길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어쨌든 길 같은 것이 위로 향해있으니,
정상으로 가겠거니 하고
또 열심히 뛰어 올라갔다.
그렇게 2~3분 정도 올랐나?
눈 앞에 시원한 경치는 안 보이고
방풍림 같은 나무만 쫙 일자로 있다.
아니, 내가 예상했던 그런 곳이 아니네
하고 잠시 실망하면서
나무 밑에까지 도달하니...
나무 사이로 들어가는 길이 하나 보이고,
그 길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빛을 따라 들어가니,
정말 놀라운 풍경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오름은 항상 옳아~!
정면으로 아주 정열적으로
불타는 하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가 진 뒤의 여운이 하늘에 남아 있었고,
손지오름의 두 능선 사이로
저 멀리 동검은이오름이 보이는 풍경이
지금까지 어떤 오름에서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이고 특별했다.
그리고 역시 오름 밑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분화구와 분화구 주변의 아름다운 능선,
능선을 가득 메운 부드러운 억새들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오름을 오를 때마다
오름으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다니...
매번 너무 감사할 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렇게 서둘렀지만,
이미 해는 기다려주지 않았다는 것.
그래도 너무 멋진 풍경에
전혀 아쉽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 오면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또 좋은 공간을 알게 되었구나 하고
행복해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오름 능선을 따라
서둘러 걸어보았다.
오름 능선을 따라 방풍림이 쭉 둘러 쌓여 있고,
그 앞에 억새로 우거진 틈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갈 수 있었다.
시원한 바람에 가을 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어,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능성을 따라 반대편으로 가니,
여기서 볼 수 있는 풍경 또한
너무 인상적이었다.
좌측에 좌보미 오름(여기도 곧 올라가 볼 예정이다)과
오른편의 동검은이 오름이 보였고,
그 앞에 묘를 둘러싸고 있는 산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산담은 제주만의 문화자원으로
묘 주변에 돌을 쌓아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한다.
잘 사는 집안은 겹담으로 정방형 모양으로 쌓고
못 사는 집안은 홑담으로 타원형으로 쌓고,
아주 못사는 집안은 아예 산담을 못 쌓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렇게 많은 산담들을
한눈에 조망하는 경험도 오늘 처음이었다.
노을과 산담이 묘하게 더 잘 어울리는
풍경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잠깐의 손지오름에서의 감동을 느끼고,
이제는 서둘러 하산해야 하는 시간.
올라올 때 10분 정도 걸려서 올라왔던 길이라
쉽게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신발이 너무 미끄럽고,
경사와 억새들 사이로 난 길이다 보니
조심조심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손지오름에 가시는 분들은
올라가는 시간이 비록 15분 정도밖에 걸지지 않지만,
경사가 생각보다 있으니,
편하고 잘 안 미끄러지는 신발을 신고
가시길 권해 드린다.
무릎이 안 좋으신 분들은
특별히 조심하셔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음번에는 진짜 여유 있게 올라와서
천천히 손지오름과 노을 하고
충분히 교감하고 내려가야겠다.
아이들하고도 같이 오고 싶은데,
같이 오려나 모르겠다.
오늘도 행복한 순간에
나 혼자 과분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아! 근데 한라산과 비슷해
손자오름이라고 했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잘 못 느꼈다.
다음에 가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살펴봐야 겠다.
꼭 가봐야 하는 손지오름 근처 아름다운 오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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