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6. 11:52ㆍ어쩌다 얻어걸린 제주에서
며칠 전 아내에게 전화가 한통 왔다.
예전 동아리에서 알게 된 지인이
보롬왓에서 아이들 체험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 와서 체험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몇 번 가본 곳이긴 했지만,
아이들 체험을 하겠다니,
겸사겸사 가보기로 했고,
오늘이(2020. 12. 05) 그 날이었던 것이다.
보롬왓은 항상 넓은 들에
많은 꽃들로 가득한 곳이긴 한데,
지금은 조금은 애매한 기간일 거 같긴 했는데...
막상 가보니,
전과는 입장 동선부터해서
약간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무료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성인 4,000원, 초등학생까지는 2,000원
입장료를 받는다.
아쉽게도 도민 할인도 없다.
도민 할인이 없다니... ㅜㅜ
어쨌든, 아쉬운 티켓팅을 하고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로 들어가면 비밀의 화원을 지나가게 된다.
비밀의 화원 입구는
틸란드시아 터널로 되어 있다.
틸란드시아 터널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마스크를 했는데도 꽃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옆으로 살짝 고개들 돌려보니
국화꽃들이 가득하네요.
역시 국화꽃 향기가 이렇게나
진한 줄 오늘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국화꽃향기를 뒤로하고,
길 따라 들어가니,
이번엔 맨드라미 꽃이 가득합니다.
비밀의 화원 곳곳에 이쁜 조명들로
분위기를 더 해 줍니다.
밤이면 분위기가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보롬왓 영업시간은
9:00부터 오후 6:00까지니 괜히 늦게는 가 보지 마세요.
사실 이번 보롬왓 방문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시기적으로 지금 보롬왓 정원에
꽃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길지 않은 비밀의 화원 지나면서부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것저것 사진 찍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선생님과 이미 만나서 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자마자 무언가 가루를 가지고
열심히 조물딱 거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별 말씀 없이
그냥 가루를 만져보고, 뭉쳐도 보고,
놀라고만 하시네요.
나중에 가루에 대해 살짝 물으니,
메밀 가루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별거 아닌 가루인데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잘 만지고 놉니다.
아니 저 가루가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닌데,
저렇게 잘 가지고 놀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다 만지고 난 뒤에
저도 어떤 느낌인지 살짝 만져봤는데,
부드러운 촉감이 그냥 좋네요~
아이들도 그냥 좋아서 계속 만졌을 것 같아요.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좋으면 그냥 계속하는 거죠~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이유를 찾고,
결과를 원하는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좀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아이들이 메밀 가루를 다 만지고 난 후
잠시 체험 프로그램에 대해 진행하시는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어떤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즐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해 줍니다.
결과물을 기대하기보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체험이라는 말이
저와 아내는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산책을 나갑니다.
먼발치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보롬왓의 뜻은
보롬은 바람, 왓은 밭이란 뜻으로
바람 부는 밭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늘은 그렇게 심하게 바람이 불진 않았지만
보롬왓에 들판에 거의 져가는 핑크뮬리가
하늘하늘거립니다.
저 멀리는 애기 유채꽃들이
방문하는 손님들을 하루빨리 기쁘게 해 주고 싶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과
옅은 푸른빛의 하늘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핑크뮬리밭을 지나가니,
유채꽃밭 옆으로 키 작은 수수가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길 가운데 통나무 의자가
키작은 수수와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개오름이
허전할 뻔한 배경을 꽉 채워 주고 있습니다.
이 풍경 또한 제게 목가적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수수길과 애기 유채꽃들을 보고
아이들이 다시 비밀의 화원 쪽으로 들어갑니다.
따라 들어오다 보니,
오른편에 보롬왓의 대표 탈 것인
깡통기차가 키 큰 나무를 병풍 삼아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네요.
나중에 들어보니,
제가 볼일을 잠시 보고 온 사이
깡통기차도 탔다고 합니다.
깡통기차 타는 모습 찍어주고 싶었는데,
놓쳤네요.
들어온 아이들은 열심히 창에다
물총을 쏘고 있었습니다.
창의 천은 아이들의 물총에 따라
물들어 갑니다.
자유롭게 뿌려지는 색감들이
점점 멋진 작품이 되어가는 게 신기하고 멋졌습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는
이 물감들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의 재료로
색을 냈다고 말을 해 줍니다.
노란색은 울금색, 빨간색은 레드비트색, 녹색은 녹차색,
파란색은 청치자색, 베이지색은 메밀가루색,
옅은 검은색은 감태색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연의 재료를 말려서 가루를 만들어 물에 타서
만든 색깔들이라고 하는데, 물감색보다 더 수수하지만,
훨씬 아름답게 보입니다.
집에서 아이들과 이렇게 해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 참에 마음 다잡고 해 봐야겠네요.
열심히 물총을 쏜 아이들은
어느새 자리 잡고 앉아서 점토 놀이와
자신만의 작은 꽃다발을 만들기 놀이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작은 꽃다발은
국화 하고, 유채꽃, 메리골드 비슷한 꽃으로 만들었는데,
아빠, 엄마한테 자랑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이 체험하는 동안 저와 아내는 사진찍기 놀이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하고, 모처럼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네요.
그러다 2년 동안 너무 궁금했던 꽃을 발견했습니다.
전에 어떤 카페에서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이름이 궁금했던 꽃이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숙제를 풀었네요.
그 궁금했던 아이의 이름은
버베나!
내년엔 집안에 이 꽃을 꽃 심어보렵니다.
버베나라는 이 꽃은 앙증맞은 작은 꽃과
가녀리지만 곧게 뻗은 줄기가 너무 매력적이랍니다.
나중에 잘 키우면 제가 글로 멋지게 써 보겠습니다. ^^
아이들이 체험을 끝내고 나서
아이들과 저는 여유 있게 보롬왓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게다가 여기서 너무 이쁜 메리골드와
크리소카디움이라는 선인장도 업어왔답니다.
이쁘게 꽃 핀 메리골드를 구입하면서
채종 해서 파종하고 키우는 법까지 여쭤봤는데,
과연 내년에 저희 집에 메리골드가
가득할 수 있을지 기대해 주세요.
보롬왓이 별로였으면,
다른 곳에 가서 아이들과 더 놀다 오려했는데,
이것저것 많이 얻은 꽉 채운 하루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얻어걸린 제주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미있는 수산본향당과 하로산또 이야기 (10) | 2020.12.10 |
---|---|
제주2공항이 생기면 지역 경제가 정말 살아날까요? (20) | 2020.12.09 |
제주2공항 소음 영향 평가 재조사가 이루어질까? (6) | 2020.12.08 |
제주살이 - 한달살이, 연세 - 집구하기 (16) | 2020.12.07 |
한라산의 손자라는 노을 명당 손지오름 (8) | 2020.12.05 |
아이들이 직접 그린 마을 벽화 (14) | 2020.12.04 |
사계해변에서 두더지 잡던 날 (16) | 2020.12.03 |
에메랄드 빛 바다 김녕의 숨은 매력 (20) | 2020.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