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15. 17:29ㆍ어쩌다 얻어걸린 제주에서
제주에서 살아보자고 생각하고 2015년 3월에 입도해 처음으로 올레길 1코스를 걸었다.
그간 오름은 그래도 자주 갔다고 생각하는데,
올레길은 생각처럼 쉽게 걸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15~20km 정도 되는 올레길을 걷는다는 게,
시간을 좀 넉넉히 잡아야 하는데,
다둥이 아이들을 떼어 놓고 그렇게 다닌다는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만 5년 만에 첫 올레길을 나섰다.
올레길의 시작은 시흥초등학교.
집에서 불과 10분 정도 밖에 안 떨어진 곳인데,
여기를 그렇게 오기가 힘들었다니...
올레길을 걷자 마음 먹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올레길 여권을 구입했다.
올레1코스에 있는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살 수 있다.
가격은 2만원.
굳이 살 필요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럴 필요 없다.
하지만 걸어 다니면서 시작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에 올레길을 걸었다고 기념할 수 있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그리고, 스탬프를 다 모으면 완주증과 완주메달을 받을 수 있고,
제주올레 홈페이지(old01.jejuolle.org/) 명예의 전당에 사진과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언제 완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패스포트를 사고 출동~
(근데, 왜 영어로 써 있는지... 한글로 좀 해 주지)
올레1코스는 시흥초등학교 근처에서 시작한다.
시흥리에서 1코스가 시작하는 것은 비로소 흥이 난다는 의미의 마을 이름 때문인 것 같다.
마을 이름에 처음시 始 가 들어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 올레길 마지막 코스에 가면
통달함을 마쳤다는 뜻의 종달리라는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마을에는 마치다종 終이 들어간다.
올레길은 이런 마을의 이름까지 고려해서 코스를 개발한 것 같다.
올레1코스를 시작해서 조금 걷자마자, 멋들어진 절벽으로 둘러싸인 말미오름이 보인다.
밭과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는 말미오름의 모습이 정말 멋지다.
돌담들이 호위하는 길을 따라 말미오름을 향해 걸어가면
앞에 펼쳐진 풍경들도 멋지지만,
뒤돌아 잠시 걸어온 곳을 바라보면,
저 멀리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는 바다의 모습에 가슴이 확 트인다.
오르막길도 아닌 듯한 길을 겨우 몇 백 m 걸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멋진 풍경들로 몇 번씩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조금 더 걸어가면 말미오름이다.
말미오름은 초반에 약간 가파른 듯 하지만,
10분 정도면 정상에서 시원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지친다 싶으면 정상에 도달하는데,
정상에 도착하면 간세를 볼 수 있다.
간세는 게으름뱅이라는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 왔다고 한다.
오름 걷는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도 걸을 수 있다 해서 그런 건가?
뜻은 뭔가 잘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지만,
간세라는 음과 그의 상징인 제주조랑말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말미오름에 올라가면 능선을 따라가며 성산 일대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성산일출봉은 물론이고, 우도,
그리고 좀 더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종달리 마을과 지미봉도 한눈에 들어온다.
10분 정도 올라, 이렇게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0분 투자해서 눈과 마음이 호강한다.
이 것이 제주와 오름이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오르고,
부주의함으로써 오름들 정상의 땅들과
올라가는 길들이 파이고 있다.
휴식년에 들어가는 오름들과 보수하고 있는 오름들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제주의 오름은 물론이고,
자연이 앞으로 더 잘 보존되기를 바랄 뿐이다.
말미오름을 돌아 내려가 숲길을 조금 걷다 보면
바로 알오름 도달하게 된다.
알오름 정상에 올라가면 누구나 왜 알오름이라 불리는지 가늠할 수 있다.
말미오름에 둘러 쌓여 알처럼 동그랗게 봉긋 솟아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남자 같은 투박한 말미오름이라면,
알오름은 다소곳한 여자의 느낌이 든다.
알오름을 오르다 뒤돌아서면
오밀조밀 오름군들이 펼쳐진다.
이는 뒤돌아 바다를 봤던 그 느낌과 전혀 다름 안정감을 안겨준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높지 않은 오름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포근함을 느끼게 해 준다.
알오름 정상은 말미오름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완만한 경사를 채 10분도 오르지 않아
눈앞에 완벽한 조망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준다.
뒤로는 포근함을 느끼게 해 주는 오름군과
앞으로는 시원한 성산 일대의 바닷가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니...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잠시 땀을 식히고,
종달리 마을을 내려보며 내리막 길을 걷는다.
알오름에서 종달리까지 가는 길은 사실 조금 아쉽다.
여기서 종달리까지 갈 때,
도로 옆으로 걸어가야 하는데,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달초등학교를 끼고 본격적으로 아기자기한 종달리 마을을 감상할 수 있다.
종달리 마을 안에는 소품샵도 있고,
괜찮은 식당, 카페도 있으니
쉬었다 가고 싶은 분들은 여기서 휴식을 취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종달리 마을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해안도로에 접어든다.
성산 일대 바다는 철새들이 많이 오고 간다.
그래서,
푸른 바다와 다양한 철새를 보고 걷다 보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또, 철마다 한치나 오징어를 내다 말리기도 하는데,
이 모습 또한 바닷가를 걷는 이들에게 정감 있게 해 준다.
해안가를 따라 쭉 가면 성산항을 끼고돌면서 성산갑문을 건너게 된다.
오른편엔 성산항이, 왼편엔 성산갑문을 통해 드나드는 바닷물과 뻘이 펼쳐져 있는데,
이 곳에서 조개가 꽤 잡히고 맛도 괜찮아 관광객뿐만 아니라,
도민들도 많이 캐서 국 끓여 먹는다고 한다.
성산항을 끼고돌면
성산일출봉을 향하게 된다.
성산일출봉도 사실 제주에 와서
3년 차에 애들 성화에 따라나서서 올라갔었는데,
이렇게 멋진 곳을 지금까지 올라가지 않았나,
스스로를 한심해하기도 했다.
어쨌든 성산항부터는 지금까지 해안도로와는 다른 또 다른 길을 감상하며 걷게 된다.
절벽에 있는 초지에 있는 길을 걷게 되는데,
거친 바람소리와 파도소리가 귓가에 흥얼거린다.
초지에는 들꽃들이 수수하게 자리 잡고 있고,
그 너머에 시원한 바다와 우도가 보인다.
앞에는
돌고래 머리 같은 성산일출봉이 귀엽게 보인다.
성산일출봉을 올라가는 것은 올레1코스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쉽지만, 성산일출봉 앞을 지나 광치기해변을 따라 걷는다.
사실, 여기까지 걸었다면,
성산일출봉이 1코스에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올라가고 싶지는 않을 것 같긴 하다.
여긴 따로 올라가 보면 좋을 것 같다.
계단이 많아 무릎에 무리가 되시는 분들은
일출봉 올라가는 것이 만만하지는 않다.
어쨌든 성산일출봉을 뒤로 광치기해변을 걷다 보면,
올레1코스 마지막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올레1코스를 걸은 느낌은
아주 정성 들여 요리한 코스요리를 먹는 느낌이다.
정말, 1코스만 돌았지만,
여기서도 제주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감상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훌륭한 올레길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걷는 사람들은 자연보호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쓰레기봉투를 하나 들고,
채우면서 걸어봐야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평소 무릎이 안 좋은 편이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40대 후반인 나는
올레1코스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걷는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렸다.
더 천천히 쉬면서 걸어도 5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이고,
앞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다채로운 풍경들이 걷는 시간들을 매우 즐겁게 해 준다.
즐거운 올레길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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