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크리스마스 같았던 윗세오름

2020. 10. 30. 12:37어쩌다 얻어걸린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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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자주 와도 한라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젊은 세대들...

 

한라산 백록담은 대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한번 올라가고

올 3월 초에 한번 다녀왔다.

 

요즘은 백록담에 다녀오면 

인증서를 준다고 하던데,

올봄에 갔을 때는 코로나 때문에

인증서 발급을 해 주지 않아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렇다고 또 다녀올 수도 없고...

 

성판악 코스로 갔었는데,

올라가는 건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평소 무릎 상태가 안 좋은 데다,

완전 돌밭으로 된 길을 내려오다 보니,

무릎에 통증 때문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시 그 고통을 감내하며 올라갈 자신이 없다.

내 인생의 백록담은 이제 없는 것인가? ㅜㅜ

 

올 3월의 백록담

 

 

하지만, 그래도 자주 다녀온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윗세오름.

 

영실코스를 따라가면 되는데,

백록담 코스에 비해서 수월하다.

 

영실휴게소에서 윗세오름까지 3.7km이며

빨리 다녀오면 왕복 3시간 정도...

좀 천천히 다녀오면 4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물론 영실 코스로 가게 되면,

백록담을 갈 수는 없다. 

 

몇 년 전에 통제되었던 남벽분기점까지는 갈 수 있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가보지 못하고,

윗세오름까지만 몇 번 다녀왔다.

 

그렇게 몇 번씩이나 다녀온 이유는 하나.

눈이 왔을 때,

영실 코스로 올라가면,

완전 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천국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공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눈이 없는 윗세오름이

아름답지 않다는 건 아니다. 

 

폭설이 왔을 때 윗세오름 부근에서 바라본 백록담

 

 

2017년에 제주에 유래 없는 큰 눈이 왔었다. 

그래서 그때 세 번 도전 끝에 

맑은 날 윗세오름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 전엔 날씨가 너무 흐려서 한 치 앞도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그 멋진 풍경을 보고 싶던 차에,

올 4월 초에 한라산에 눈이 온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다 함께 단단히 준비하고 출동을 했었다.

 

그러나, 그 날 아쉽게도,

기상악화로 입산이 통제되어 사계리 가서 놀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다시 도전했다.

이날 따라나선 아이는 쌍둥이 중 하나인 아라.

 

다른 아이들은 그냥 집에서 있는 것으로...

 

아쉽지만, 아라와 아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만 재도전을 했다.

한라산에 눈이 많이 녹지 않았기를 바라며...

 

와이프는 윗세오름에 가는 것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한라산은 처음 가는 것이었기도 했고,

평소에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에 다녀와서 찍었던 설경 사진을 보고,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다행히 이날은 화창한 4월의 날씨였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조급했다.

눈이 다 녹을까 봐...

 

영실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서둘러 윗세오름을 향해 올라갔다.

 

초입 부근에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그래서, 윗세오름에는 더 많은 눈이 있을 것이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초입에도 눈이 많이 있으니, 윗세오름은 더 많을 것이라 기대를 안고...

 

 

 

처음에 잘 올라가던 아이와 아내는,

영실코스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계단 코스에 접어들자,

힘들어했다.

 

아마도 1km가 조금 안 되는 이 계단 코스는 경사도 좀 있고 해서

많이 지치기는 하지만,

이 코스만 지나면, 

거의 평지 같은 길만 남게 된다.

 

병풍바위를 보며 걷는 이 계단 코스가 보기 보다 힘들다

 

이것이 바로 병풍바위다

 

병풍바위 위에서 바라본 오름군들

 

 

그 길을 따라 30분 정도 가면 윗세오름에 도착.

 

조금만 가면 이제 편하게 갈 수 있다고, 

독려하며, 드디어 숲길 사이로 백록담이 똭!

 

숲길 사이로 보이는 백록담의 자태가 고고해 보인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숲길을 빠져나왔다.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우리가 기대했던 풍경은 아니었다.

 

아쉽게도,

다시 4월의 기온으로 돌아온 한라산의 눈은 

무서운 속도록 녹고 있었다. 

 

4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풍경을 기대했는데...

 

눈이 벌써 많이 녹아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멋진 풍경!

 

 

 

그래도, 아이와 아내와 함께한 이 산행이

내게 그 어떤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순간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윗세오름을 찍고, 

잠깐의 휴식과 맛난 음식을 먹고서 다시 하산.

 

윗세오름에서 기념사진 찰칵!

 

 

 

내려올 때는 아이와 아내가 속도를 내서 내려간다.

무릎이 안 좋은 내게,

내리막은 더 천천히 갈 수밖에 없는데, 

야속하지만, 힘들다고 짜증 안내고, 

신나게 내려가는 두 분께 고마울 따름이었다.

 

눈에서 이러고 안 놀순 없죠~

록담이 안녕~ 다음엔 아가들 다 데리고 올께~

 

하산하면서, 정말 놀랄만한 풍경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영실기암에 쌓였던 눈이 녹아

인스턴트 폭포를 만들어서 절벽 사이로 쏟아 내리고 있는 풍경이었다. 

 

올라갈 때만 해도 이 폭포가 없었던 것 같은데...

한두 시간 사이에 엄청난 폭포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크기의 폭포가 두 개 씩이나...

병풍바위를 지나 내려오는 계단에서 바라보는데,

시원하게 쏟아 내리는 폭포 소리가 나의 귀를 즐겁게 해 줬다.

 

실제로 보면 폭포의 웅장함이 더 느껴지는데, 영상으로 표현이 안되어 아쉽다

 

영실기암 사이에 쌍폭포가 생기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천국같이 하얀 세상을 못 봐서 아쉬웠지만,

빠르게 녹아내리는 눈 덕분에,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폭포를 볼 수 있다니...

 

대자연은 항상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부족하다기보다,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안겨주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멋진 산행은 마무리되었다.

다음번엔 네 아이와 다 함께 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단풍 보러 가야 하는데...

아이들이 따라 줄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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