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모양의 지형을 가진 난산리 난미밭담길을 걷다

2020. 12. 16. 10:34어쩌다 얻어걸린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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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산리에 최근에 갈 일이 있었는데, 

운전하다가 앙증맞고 귀여운 작은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난미 밭담길이라 쓰여 있는 간판이었다.

'어? 난산리에도 걷는 길이 있네'

혼자 이렇게 생각하고 볼 일을 보고 

시간이 남으면 걸어봐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이렇게 앙증맞은 간판이 길 옆에 있어 눈에 띄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었기에

이 날도 기대가 많이 되었다. 

 

난산리는 난초모양처럼 생겨서 난야리로 불리다가

난미, 난뫼로 불렸고, 

이를 한자로 표기해 난산리가 되었다고 한다.

 

항상 제주 지명을 보면, 

원래 그대로 우리나라 말로 잘 지어진 이쁜 지명들을

굳이 한자화해서 다시 이름을 붙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큰물뫼오름은 대수산봉, 다랑쉬오름은 월랑봉 등...

 

물론 한자가 통용되던 시대가 있었기에,

우리말이 서민들의 언어라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으니, 

대충은 짐작은 가긴 하지만 서도, 아쉽다.

조금씩 우리말 지명을 찾는 움직임들이 있긴 한 것 같지만

아직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않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난산리도 안타깝게도 지금 제주에서

고통받고 있는 마을 중 하나이다.

 

바로 제주 2공항이 생기면 가장 피해를 받는 4개 마을

수산리, 온평리, 신산리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초의 모양을 닮은 마을의 밭담 길은 어떨까?

밭담길은 예로부터 제주도에서 밭농사를 하는 곳의 경계를

낮은 돌담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 밭담 사이에 난 길을 말한다.

굳이 설명 안 드려도 이미 아셨을 것 같긴 하지만... 

 

이름부터 너무 정감 있지 않나요? 밭담길. 

난미 밭담길은 그렇게 긴 코스는 아니었다. 

난산리 복지회관, 장수마을 사업장, 면의 모루, 서당골, 

그리고 난산리 보건진료소/난산리 경로당을 거치는 

순환코스인데, 2.8km이고 순환하는데 45분 정도 걸린다고 

난미 밭담길 설명해 주는 이정표에 적혀있다.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제주에 관광객들이나 도민들이 걸을 수 있는

밭담길들이 다섯 군데가 더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애월읍 수산리 '물메 밭담길', 구좌읍 월정리 '진빌레 밭담길'

구좌읍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 성산읍 신풍리 '어망아방 밭담길'

성산읍 난산리 '난산 밭담길', 한림읍동명리 '수류촌 밭담길'

이렇게 총 6개의 밭담길이 있다고 한다.

 

집에서 그래도 가기 편한 곳이 몇 군데 있으니

잘 염두에 뒀다 다녀봐야겠다.

 

나는 난산리 복지회관에 주차하고, 

여기서부터 밭담길을 시작했다. 

 

밭담길 설명이 적혀있는 이정표

 

난산리 복지회관에서 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한 나의 산책이지만,

아쉽게도 도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별 감흥 없이 뚜벅뚜벅 걷기만 했다.

 

그러다 도로를 벗어나 밭담길로 들어서자

진짜 제주의 조용한 마을에 들어선 느낌이 확 들었다.

 

난산리에서는 귤뿐만 아니라 

당근도 많이 심으시는 것 같다. 

 

걷는 중간중간 당근밭을 지나쳤다.

당근은 제주시 구좌에서 많이 나는 줄 알았는데...

 

물론 난산리는 귤밭으로 더 유명한 공간이라고 한다.

죽범 이승익 시인은 성산십경 중에

제4경을 난산귤림으로 꼽았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 난산리이다.

 

이승익 시인은 1951년 서귀포 성산읍 온평리에서 태어나,

2001년 월간 <한맥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분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승익 시인의 성산십경을 정하고

각 경마다 시를 쓰시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승익 시인이 말하는  성산십경은 다음과 같다.

 

 제1경을 일출장관<日出壯觀>
성산일출봉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여 세계적인 명소

제2경에 두산절경<斗山絶景>

시흥리에 있는 두산봉의 아름다운 경치.

마을에서 바라보는 두산봉 바위는

과히 신선이 노는 곳 같다.

제3경에 수산야색<水山野色>

수산과 난산 사이 드넓은 들판, 수산평의 아름다운 경관.

서부 영화에 나오는 황야를 연상케 한다.

제4경에 난산귤림<蘭山橘林>
난산 마을 골목마다 자라는 감귤밭의 정경

깊은 가을 금빛을 발하며 눈웃음 짓는 모습은

과히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제5경에 연혼포조<連婚浦釣>

고.양.부 삼신인이 혼인을 했다는 혼인지
마을 온평리, 삼신인과 혼인할 배필이 떠 올랐다는

온평 포구에서 낚시를 드리우는 모습이 아름다워 연혼포조라 했다.

제6경에 독산가경<獨山佳景>

신산리와 삼달 사이에 홀로 선 독자봉
정상에서 바다와 한라산을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제7경에 미천굴경<美千堀景>.

삼달리에 있는 미천굴의 경관.


제8경에 마장도성<馬場濤聲>

신천리와 신풍 사이 바닷가 목장으로
바다에서 들리는 파도소리와 파란 잔디가 어우러져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제9경에 협재선돌<峽在旋乭>

신양리 섭지코지 선돌 주위의 풍광.


제10경에 식산주해<食山周海>

일출봉을 마주 보는 식산봉은 바위산
주위의 오밀조밀한 바다 경치가 그만이다.

오조포구를 비롯하여 속칭 통밭알이
호수를 이뤄 마치 선녀들 놀이터 같은 곳이다.

 

 

당근이 너무 가지런해 이 모습자체로도 너무 멋졌다

 

귤밭사이에 풀이 너무 가지런히 자라고 있어서 한번 맨발로 밝고 싶었지만...

 

밭담길을 돌아 아기자기한 마을을 보고

다시 도로로 나왔다. 

 

도로를 걸어가는데, 도로 옆에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한 담쟁이가 둘러쳐진 창고와

그 앞에 익어가는 감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늦가을의 분위기를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도로만 아니면 너무 아름다운 가을풍경 같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멋진 가을 풍경을 지나 조금 더 길을 따라가니

그 뒤에 있는 집은 처음 보는 꽃들이 담아래 만발해 있고, 

그 뒤로는 억새가 가득 피어 있는 들판이 눈에 띈다.

 

잠시 멈춰 서서 무슨 꽃일까 살펴보지만,

내가 알리 없는 꽃들만 가득할 뿐.

 

한때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 야생화 책도 얻어

집에 두고, 찍은 사진과 야생화 책에 있는 꽃을 열심히 찾아도 봤지만,

눈썰미 없는 나는 한참 헤메기만 한다.

 

그러다 꽃 관련 앱도 깔아보고 했지만, 

역시 성에 차지 않는다. 

 

그렇게 잠시 꽃과 억새를 바라보고,

남은 길을 재촉했다. 

 

처음 보는 꽃이었어요~

 

이 곳을 지나서 조금만 가니

길을 건너서 다시 밭담길을 걷게 된다.

 

여기서부터 제4경인 귤림이 제대로 

보이는 것 같다.

 

귤밭 사이로 난 길을 한참 따라 걸었다.

익어가는 귤향이 느껴진다.

 

갈림길에는 귀여운 돌 캐릭터가

길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밭담길 캐릭터 귀엽지 않나요?

 

감귤밭 사이를 좀 걸어가니,

면의 모루라고 써 있는 큰 비석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계단 위에는 잘 관리되어 있는 듯 보이는 

잔디들이 깔려 있는 길이 보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돌계단을 올라가 보니,

넓은 동산 위로 잔디가 깔려있고, 

큰 나무(후박나무 같아 보이는)에 빨간 그네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정자가 하나 있었고,

그 옆 큰 돌에 면회/면의 모루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면의 모루는 1895년 주민자치 성격의 조직으로

회의를 치렀는데, 이 동산에서 면회의를 했다고 한다.   

 

작은 동산이긴 하지만 

면의 모루에서는 난산리와 귤밭들을 조망할 수 있는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난미 밭담길을 걸으시는 분들은 여기를 지나치시면 안 돼요.

 

면의마루로 들어가는 길이에요

 

면회의를 하던 동산이었다고 합니다

 

저 빨간 그네는 누가 타는 걸까요? 

 

면의모루를 내려와서 다시 밭담길을 걸어가니,

팽나무가 보인다.

 

갈림길에 있는 이 팽나무는 당목인 듯, 

오색줄이 쳐있었다. 

 

팽나무 가지는 길 위로 뻗어

새로운 길로 안내하는 문 같았다.

 

이 팽나무 옆에는 쉼터가 있었는데

운영은 하지 않아 아쉬웠지만,

간단한 음식과 아기자기한 소품도 파는 것 같았다.

 

팽나무에 오색줄이 쳐 있는 연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당나무를 지나 서당골로 접어들었다. 

서당골은 생각보다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펜션 같은 이쁜 집이 있어서 그랬나 보다.

 

이 집 담에는 파랗고 하얀 뿔소라 껍데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기도 했다.

 

뿔소라 색칠해서 모아놓으니 이쁘다

 

조금 더 가다가 사람인 듯 사람 아닌 

시크한 강아지가 집주인처럼 길게 목을 빼고 나를 쳐다본다.

지나쳤다가 계속 그러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돌아가서 찰칵!

 

길게 목을 빼고 쳐다보는 강아지씨

 

이제 거의 다 걸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넓은 운동장이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운동하는 곳인가 하고 들어가는데,

오른쪽에 이곳은 난산국민학교 터로 1934년에 개교해서

1995년 3월 5일에 문을 닫고 신산국민학교와 통합되었다는

글이 쓰여 있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역시 너무 썰렁하다.

 

난산국민학교에 대한 글이 써 있는 비석만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일 듯 말듯한 교실 건물 앞에는 오래된 국민학교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사자상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뒤로 보이는 키 큰 야자수들은 동남아 어느 곳으로 

이끌어 주기도 한다.

 

교실로 들어가 보려고도 했지만,

괜히 학교괴담의 주인공이 될까 봐 

우리 집에 두면 좋겠다 싶은 탐나는 문짝만 찍고 

운동장을 벗어났다.

 

솔직히 조금 무섭기는 했던 것 같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

 

수산국민학교의 사자상 뒤로 교실이 있던 건물이 살포시 보인다

 

교실 문이 멋지지 않나요? 나중에 아이들하고 사진찍으로 다시 가볼까?

 

이렇게 난산 국민학교를 지나

조금 걸어 출발했던 그곳에 도착했다.

 

올레길을 걸을 때건, 숲길을 걸을 때건

언제나 그만의 감동이 있었던 것처럼

난미 밭담길도 마찬가지로 제주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말로는 표현하기 쉽지 않지만...

이럴 때마다 나의 문장력의 한계가 부끄럽다.

 

2.8km, 45분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난 1시간 조금 넘게 걸린 것 같다.

 

조금 천천히 여유를 갖고 걷는다 생각하시면

1시간 30분 정도 예상하시면 넉넉하실 것 같다.

물론 너무 조용한 마을이고, 

길을 걷는 동안 관광객들은 한분도 뵙지 못했다.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조용히 난미밭담길을 걸으면서

한편으로는 제주 제2공항이 생기면 앞으로 이렇게 이쁜 마을도

아기자기한 길도 걷지 못하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내내 함께 했다.

 

이 글이 난미밭담길을 걷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즐거운 밭담길 여행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아, 난미 밭담길로 가시길 원하는 분은

난산리 마을 복지회관을 검색하고 

그곳에 차를 주차하시고 걸으시면 편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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